라이프

은퇴 일기4 - 흙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소소한 인생 이야기

자유로운인생일기 2025. 7. 6. 22:43

 

 

– 서툴고 느리지만 가장 따뜻한 우리 부부의 하루들


🧓 할아버지의 하루, 이제는 손자와 작은 텃밭으로 흐릅니다

은퇴를 하고 나면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하루가 더 빠르게 지나갑니다.
아침 눈 뜨면 제일 먼저 챙기는 건 4살 손자의 등원 준비,
그 다음은 텃밭일에 필요한 물통과 장갑입니다.

이제 내 하루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단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손자 돌보는 할머니 보조하기, 다른 하나는 작은 텃밭 가꾸기.
어쩌면 이 두 가지가 나를 바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 그 어설프고 서툰 손길들

도시에서만 살다 농사는커녕 흙 한 줌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던 삶.
그런 내가 삽을 들고, 호미를 들고, 무릎 꿇고 땅을 파고 있습니다.
어린 고추 모종을 옮기다가 줄기를 꺾어버리기도 했고,
수박 참외는 거름을 제대로 못 줘서 꽃만 피우고 열매는 달릴 생각도 안하고,

그래도 오늘도 밭으로 향합니다.

농사일에 바뻐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잡초를 뽑고, 물도 주고, 벌레도 잡고,.
서툴지만 그 속엔 우리 부부의 노력과 정성이, 그리고 사랑이 자랍니다.

심은 작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상추, 고추, 토마토, 호박, 오이, 수박, 참외, 고구마, 가지, 쑥갓, 청경채, 들깨, 옥수수…
없는 게 없는 텃밭이라며 웃지만, 정작 제대로 크는 건 몇 개 안 됩니다.
그런데도 아내와 나는 매일 밭으로 나갑니다.

땀 흘리며 일하고, 웃으며 실패하고,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살아갑니다.

 


🍱 손자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손자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걸 손 흔들며 지켜보다가
우리는 어김없이 텃밭으로 향합니다.
그 동안 바쁜 삶 속에서는 놓쳐버린 고요한 시간.
이제는 햇살의 기울기나 바람의 냄새로 계절을 느낍니다.

밭일을 마친 오후엔 밭 한켠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꿀맛 같은 점심을 먹습니다.
갓 딴 상추에 고추 하나 올려 밥 한 숟갈 싸먹고,
쑥갓과 청경채로 만든 나물 반찬을 곁들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 코스는…
김밥 한 줄, 소보로빵 하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도시의 카페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맛있는 우리의 ‘텃밭 디저트 타임’입니다.


🍑 천도복숭아처럼 잘 익어가는 우리 인생

밭 가장자리엔 천도복숭아가 한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처음엔 가지가 약해 잘 크지 않더니,
올해는 작은 열매가 하나둘 붉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웃으며 말합니다.
“당신 얼굴도 복숭아처럼 잘 익어가고 있네~”
정말 그렇습니다.
일찍 피는 꽃보다, 늦게 익는 과일이 더 달고 깊은 맛을 내듯
우리의 인생도 지금 가장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 손자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

오후가 되면 손자를 데리러 나섭니다.
어린이집 앞에서 두 팔 벌려 달려오는 손자,
“할아버지~!” 하고 덥석 안기는 그 순간,

이 세상 그 어떤 화려하고 높은 자리보다 더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라는 자리입니다.

돌아오는 길, 손자의 손엔
텃밭에서 딴 방울토마토 몇 알, 들깨잎 하나를 들려 줍니다.
“이거 할아버지가 키운거야!”
어린 손자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뿌듯함이 묻어 납니다. 


🧑‍🌾 처음이라 서툴지만 가장 충만한 삶

텃밭농사도 서툴고, 육아도 완벽하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합니다.

과거엔 업무로, 회의로, 많은 스트레스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면
지금은 손자의 웃음, 아내의 미소, 텃밭의 흙냄새, 복숭아 향기가 하루를 채웁니다.
그 어떤 연금이나 퇴직금보다 값진 선물 아닐까요?


📌 에필로그 :  이제는 이 작은 텃밭이 우리 부부의 삶입니다.

한 줄 김밥, 소보로빵 하나, 아이스커피 한 잔,
그리고 익어가는 복숭아 한 알.

이 모든 것이 모여
"은퇴 후의 가장 풍요로운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됩니다.

지금 우리 인생은,
아주 작은 텃밭에서, 어린 손자와 함께,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피어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