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동료들과 걷는 추억의 길, 비 갠 뒤 맑은 공기 속에서 나눈 웃음과 다짐
비가 밤새 내렸던 터라 공기는 더없이 맑고 시원했습니다.
젖은 나무잎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잘 정비된 촉촉한 흙길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퇴직 전 오랜세월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날.
각자 은퇴 후 다른 도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 한 번 보자."는 말 한마디로 성사된 이 만남이
그저 반갑고, 설레고, 묘하게 두근거렸습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첫마디는 역시나,
“건강은 어때?”였습니다.
누군가는 혈압약을 먹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요즘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괜찮아”라며 웃어 넘기지만,
그 웃음 뒤엔 서로를 향한 따뜻한 걱정과 연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산행은 문경새재 1관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랜 세월 역사 속 인물들이 지나갔던 그 길을
우리도 함께 걷습니다.
숨은 차오르고, 발걸음은 느려졌지만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옛 이야기가 꽃피었습니다.
"기억나지? 그때 그 보고서 밤새워 고쳤던 거."
"팀장님 몰래 회식하다 들켜서 벌금 낸 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
그 시절 고생했던 일들도 지금은 아주 먼 예날 처럼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는 게,
함께 했던 시간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2관문을 지나며 자연은 더욱 더 깊어졌습니다.
키 큰 소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
바람결에 실려오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우리들의 조용한 발걸음 소리.
마치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자식 걱정을,
또 누군가는 아픈 지인들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즘 병원 다니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나네."
"우리도 이제 건강이 제일이야."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젊을 땐 돈이 중요했고, 중년엔 일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건강한 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3관문을 지나 내려오는 길,
조용한 솔숲 아래 쉼터에 앉았습니다.
노릇노릇 구원낸 감자전을 안주 삼아
하얀 막걸리가 잔에 가득 부어집니다.
땀 흘린 뒤라 그런지 시원한 막걸리 한 모금이 꿀맛 같았습니다.
“우리, 건강을 위하여!”
막걸리 잔이 부딪히고, 그 속엔 오래된 우정과
서로의 노후를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이젠 무릎이 먼저 고장 나려고 해!"
누군가 말했고,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세월의 무게가 묵직하게 깃들어 있었지요.
자연스레 다음 약속이 잡혔습니다.
"다음 달엔 단풍 보러 가자."
누구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걷는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니까요.
" 다음 달 만날 때까지 건강해야 돼 " 몇번이고 다짐하며 아쉬운 이별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자동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초록에서 서서히 진한 녹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도로 옆 들꽃,
마을 어귀 작은 시냇물까지 모든 것이 평화로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은, 어쩌면 지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이 있고,
그 모든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면 말이지요.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이 있고,
그 모든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가장 좋은 시절 아닐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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