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조용히 흘러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한데, 벌써 저녁.
시간은 참 빠르다.
오늘은 아침부터 더웠다.
부지런한 아내가 정갈하게 차려준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린 어제처럼 나란히 뒷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가벼운 산책하기 좋은 뒷산은 더 없이 상쾌하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풀벌레 소리, 나란히 함께 걷는 발자국 소리.
말없이 걷는 특별할 것 없는 시간들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예전엔 미쳐 몰랐다.
산책을 마친 뒤 동네 카페로 갔다.
유리창 너머로 더위는 여전했지만,
얼음 가득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더위를 말끔히 씻어 내렸다.

집에 돌아와 가볍게 샤워하고, 선풍기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간 팝송 몇 곡을 들었다.
빌리 조엘, 사이먼 앤 가펑클…
젊었던 시절
팝송에 심취해 밤 늦게까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라디오에만 귀 기울렸던 작은 기억들. . .
그땐 그랬지. . .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영문도 모른채 눈이 동그래지며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점심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나물 몇 가지와 함께 쌈을 싸 먹었다.
“심을 땐 분명 메운 고추가 아니라고 했는데 왜 자꾸 메워질까?”
“벌레가 있을지 모르니까 잘 살펴야 돼.”
너무나도 평범한 걱정거리가 대화의 주제가 되는 한가롭고 평온한 점심이었다.
사실 농약도 하나 치지 않고, 별로 관심도 주지 않았지만
억센 잡초들 속에서 힘겹게 자라난 채소들이 참 고맙고 대견한 일이다.
그래도 가까이에 조그만 텃밭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담백하고 소박한 맛에 마음까지 가벼워졌다.

오후엔 책상 앞에 앉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다시 펼쳤다.
“갖지 않음으로써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오늘따라 깊게 가슴속에 스며든다.
그리고 저녁,
더위가 조금 가셨을 무렵, 우린 동네로 산책을 나섰다.
내가 살고있는 신도시는 언제나 깨끗하고 정갈하다.
넓은 인도, 조용한 거리, 알맞게 심어진 가로수.
해가 지면 어린 아기들과 유모차를 끌고 산책나온 젊은 엄마 아빠들로 거리가 살아난다.
재잘재잘 웃음소리, 유모차 바퀴 소리,
한걸음 한걸음이 얼마나 다정한지 모른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그렇게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키웠던 젊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 시절이 지금처럼 겹쳐지는 이유는 뭘까?

오늘도,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더웠던 일요일 하루가 지나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가슴은 이상하게 따뜻하다.
시간이란...
그제 무심히 흘러가기만 해도
때로는 행복하다는 걸
오늘 저녁 도시의 밤풍경들이 소리 없이 말해 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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